2007년 03월 08일
주몽을 부탁해
'주몽'이 종영됐다. 대통령이 부러 주몽타임에 담화했다며 핀잔까지 듣게 만든 드라마다. 이에 시대의 양심이자 실천적 지성, 대략 40회부턴 시청자의 일원이었던(꽥) 본인이 한 마디 안 할 수 없겠다.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건 할 일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볼 때부터 심상치 않던 퀄리티는 60회에 육박하자 참담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급기야 '사상 최악의 사극'이란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지만 그놈의 관성이 뭔지... 바빠서 놓친 회차는 꼬박꼬박 다운까지 받아가며 챙겨봤음을 고백한다.
A컵도 못 채우는 스케일, 판타지만화 컨셉, 개그같은 연기, 중구난방 스토리, 우뢰매주의 미술, UCC수준의 촬영 등 '주몽'이 보여준 쌍티는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심지어 국장님, 혹은 PD 딸내미쯤 되는 애들은 뭐 그리 많이 나오는지... 대사도 없는 쓸모없는 캐릭터 불쑥불쑥 만들어서 구태여 앵글 잡아주는 장면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고년들 뜨고 싶으면 벗을 일이지... 그 편이 빠르다구.
하지만 무엇보다 답답했던 건 주인공 캐릭터였다. 어떤 사극이라고 안 그렇겠느냐마는 도대체가 주인공이 인간미라곤 없다. 항상 대의만 생각하고 사사로운 욕심은 절대 없으며, 개인적인 고뇌는 강가에 가서 혼자서만 한다. 포용력은 어찌나 넓은지 남에게 해코지 하는 법이 없으며, 열 길 물속도 알고 사람 속까지 다 아는 완전무결 초인인 것이다. 아니 나라 씩이나 세우는데 토사구팽도 서슴지 않는 독한 놈인데다 발정난 수캐에,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적장의 비데가 되는 비굴한 놈이면 안 되는거야?? 그런다고 누가 흉 봐??
허허 근데 이쯤에서 재밌는 생각이 든다. 나랏일 씩이나 하신다고 온갖 암투에 협잡질, 대국민 사기극을 일삼는 분들은 너무나 익숙하지 않던가(정치인과 공무원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이 분들이 내거는 대의명문이 항상 '국가와 민족을 위한 선견지명!'이었음을 떠올리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 당신들 말이야... 너무 인간적이잖아!
지금 우리는 한반도 역사상 유례없이 민주주의가 만개한 시대에 살고 있다. 대통령한테 육실할 욕짓거리를 퍼붓고 대놓고 오줌을 찌려도 어디어디 지하실로 끌려가 취조 당하는 일 따위는 없다. 또한 대한민국 역사상 정경, 정언유착의 사슬이 유례없이 약한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비자금이 사라졌을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차떼기, 책떼기 따위의 돈냄새 진동하는 뉴스는 안 봐도 된다. 정치부 기자들의 두둑한 용돈이었던 촌지도 이제는 옛날 얘기다.
이거 정말 좋은 세상이다. 단군 이래 이 정도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던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시민들은 피묻은 과실을 따먹을 줄만 알지 달콤한 맛을 즐길 줄은 모르는 것 같다. 신민의식이 골수까지 배어있는 탓이다. 대통령이 말이 많아 경망스럽다며 과묵하게 계엄령 선포하고 탱크로 정치하던 군주상을 그리워한다. 안 그래도 미운 놈... 촌지까지 안 주니 더 미워 죽겠다고 막말하는 언론에 부화뇌동하다가, 뒤돌아서선 네이버 초딩 찌질이들이 악플 단다며 근엄을 떤다.
이쯤에서 나는 혼란을 느낀다. 낮에는 포청일, 잠들면 용왕일 하느라 이중고에 시달렸던 포청천부터 허준, 왕건, 연개소문, 대조영, 주몽까지... 우리의 심금을 울린 슈퍼히어로들은 모두 비인간적인 분들이었다. 그런데 우리 시민들은 어찌하여 건국 이래 도덕적으로 가장 비인간적인 수장을 그렇게도 싫어하는가? 도대체 어떤 상상력이 발동했기에 건국 이래 도덕적으로 가장 인간적이었던 분들에게 다시 표심을 드러내느냔 말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귀족들에 데여서 기 한 번을 못 펴다가
TV 드라마 속 비인간적 군주에 의지하여 애정만세를 외쳐대나
정작 민주주의를 손에 쥐어주니 몸에 익은 신민의식이 반응하여
혁명가들 그려져 있는 티셔츠나 한 두 장 팔아주고
획책에 말려들어 귀족분들께 다시 권력을 쥐어준다...
아... 정말 안타깝다 못해 가여운 순환이다.
반론이 있을게다. 우리의 슈퍼히어로들은 도덕적으로 비인간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업무수행능력에서 발군이었다고... 물론이다. 나 역시 노통장에게 헌사 따위나 바치려고 이런 글을 쓰진 않는다. 현실 정치에서 이라크 파병같은 건 어쩔 수 없다쳐도 한미FTA, 주한미군 평택이전이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는 지지자 아니면 모른다.
어중간한 실용주의 정책들도 그렇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외교적으로든 지지자들은 그보다 더 빨갱이적인 정책을 원했다. 시민들은 착각하지 마시라. 덜 실용적이어서가 아니라 '유연한 진보' 운운하며(개인적으로 상당히 공감하지만) 빨간 넥타이를 벗어 던진 것이 지지자 이탈의 이유라는 걸. 그 정도 수준의 좌향조차 버거워 하는 시민사회의 경직성이야말로 끔찍하다는 걸 말이다. 게다가 개인의 종교적 신념으로 일국의 수도를 주님께 봉헌하고 수양제도 뜯어말릴 대운하 건설을 공언하는 사람이 대안이라니... 전군은 대폭소 일발 장전... 하!!!
노통장 때문에 없어진 삼천포로 이야기가 샜는데...
대통령이 국가 운영에 중대한 엑스팩터임은 분명하나 그래봤자 공화정 대의민주주의 제도하의 국가 수장이고 행정부 수반이다. 절대왕정의 군왕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을 신민으로 낮출 필요도 없고 지긋지긋한 인간적 면모를 용인할 필요도 없다. TV 드라마 속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며 대리만족 얻을 것 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면 되는 거다. 비인간적인 지도자가 되라고.
이 때 도덕성이 필요조건이고 업무수행능력이 충분조건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당신을 향해 총질을 한 지 불과 30년도 안 됐고, 근무하던 넥타이 부대들이 민주화운동 한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지 20년밖에 안 됐으며, 군사정권에 기탁하지 않은 문민정권이 탄생한 지는 채 10년이 못 됐다. 어차피 대통령은 비전만 제시한다. 실무는 각료들이 한다. 절대.네버.에버. 도덕성이 우선이다.
이놈의 시대는 양면적이다. 한 쪽에선 시스템을 따르라 하고 다른 한 쪽에선 풍족한 자유를 주겠다고 한다. 전자만을 따르거나 전자를 통해 후자를 이루겠다는 건 메트릭스에 살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반대로 후자만을 따르려면 가난뱅이 게릴라가 돼야 한다. 고로 이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양자조합의 문제다. 조합을 완성해 상수로 만들려면 우리가 40%의 시청률로 '주몽'에 보냈던 환호를 현실에서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주어졌다(given)' 개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그것이 시민사회다.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건 할 일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볼 때부터 심상치 않던 퀄리티는 60회에 육박하자 참담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급기야 '사상 최악의 사극'이란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지만 그놈의 관성이 뭔지... 바빠서 놓친 회차는 꼬박꼬박 다운까지 받아가며 챙겨봤음을 고백한다.
A컵도 못 채우는 스케일, 판타지만화 컨셉, 개그같은 연기, 중구난방 스토리, 우뢰매주의 미술, UCC수준의 촬영 등 '주몽'이 보여준 쌍티는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심지어 국장님, 혹은 PD 딸내미쯤 되는 애들은 뭐 그리 많이 나오는지... 대사도 없는 쓸모없는 캐릭터 불쑥불쑥 만들어서 구태여 앵글 잡아주는 장면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고년들 뜨고 싶으면 벗을 일이지... 그 편이 빠르다구.
하지만 무엇보다 답답했던 건 주인공 캐릭터였다. 어떤 사극이라고 안 그렇겠느냐마는 도대체가 주인공이 인간미라곤 없다. 항상 대의만 생각하고 사사로운 욕심은 절대 없으며, 개인적인 고뇌는 강가에 가서 혼자서만 한다. 포용력은 어찌나 넓은지 남에게 해코지 하는 법이 없으며, 열 길 물속도 알고 사람 속까지 다 아는 완전무결 초인인 것이다. 아니 나라 씩이나 세우는데 토사구팽도 서슴지 않는 독한 놈인데다 발정난 수캐에,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적장의 비데가 되는 비굴한 놈이면 안 되는거야?? 그런다고 누가 흉 봐??
허허 근데 이쯤에서 재밌는 생각이 든다. 나랏일 씩이나 하신다고 온갖 암투에 협잡질, 대국민 사기극을 일삼는 분들은 너무나 익숙하지 않던가(정치인과 공무원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이 분들이 내거는 대의명문이 항상 '국가와 민족을 위한 선견지명!'이었음을 떠올리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 당신들 말이야... 너무 인간적이잖아!
지금 우리는 한반도 역사상 유례없이 민주주의가 만개한 시대에 살고 있다. 대통령한테 육실할 욕짓거리를 퍼붓고 대놓고 오줌을 찌려도 어디어디 지하실로 끌려가 취조 당하는 일 따위는 없다. 또한 대한민국 역사상 정경, 정언유착의 사슬이 유례없이 약한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비자금이 사라졌을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차떼기, 책떼기 따위의 돈냄새 진동하는 뉴스는 안 봐도 된다. 정치부 기자들의 두둑한 용돈이었던 촌지도 이제는 옛날 얘기다.
이거 정말 좋은 세상이다. 단군 이래 이 정도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던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시민들은 피묻은 과실을 따먹을 줄만 알지 달콤한 맛을 즐길 줄은 모르는 것 같다. 신민의식이 골수까지 배어있는 탓이다. 대통령이 말이 많아 경망스럽다며 과묵하게 계엄령 선포하고 탱크로 정치하던 군주상을 그리워한다. 안 그래도 미운 놈... 촌지까지 안 주니 더 미워 죽겠다고 막말하는 언론에 부화뇌동하다가, 뒤돌아서선 네이버 초딩 찌질이들이 악플 단다며 근엄을 떤다.
이쯤에서 나는 혼란을 느낀다. 낮에는 포청일, 잠들면 용왕일 하느라 이중고에 시달렸던 포청천부터 허준, 왕건, 연개소문, 대조영, 주몽까지... 우리의 심금을 울린 슈퍼히어로들은 모두 비인간적인 분들이었다. 그런데 우리 시민들은 어찌하여 건국 이래 도덕적으로 가장 비인간적인 수장을 그렇게도 싫어하는가? 도대체 어떤 상상력이 발동했기에 건국 이래 도덕적으로 가장 인간적이었던 분들에게 다시 표심을 드러내느냔 말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귀족들에 데여서 기 한 번을 못 펴다가
TV 드라마 속 비인간적 군주에 의지하여 애정만세를 외쳐대나
정작 민주주의를 손에 쥐어주니 몸에 익은 신민의식이 반응하여
혁명가들 그려져 있는 티셔츠나 한 두 장 팔아주고
획책에 말려들어 귀족분들께 다시 권력을 쥐어준다...
아... 정말 안타깝다 못해 가여운 순환이다.
반론이 있을게다. 우리의 슈퍼히어로들은 도덕적으로 비인간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업무수행능력에서 발군이었다고... 물론이다. 나 역시 노통장에게 헌사 따위나 바치려고 이런 글을 쓰진 않는다. 현실 정치에서 이라크 파병같은 건 어쩔 수 없다쳐도 한미FTA, 주한미군 평택이전이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는 지지자 아니면 모른다.
어중간한 실용주의 정책들도 그렇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외교적으로든 지지자들은 그보다 더 빨갱이적인 정책을 원했다. 시민들은 착각하지 마시라. 덜 실용적이어서가 아니라 '유연한 진보' 운운하며(개인적으로 상당히 공감하지만) 빨간 넥타이를 벗어 던진 것이 지지자 이탈의 이유라는 걸. 그 정도 수준의 좌향조차 버거워 하는 시민사회의 경직성이야말로 끔찍하다는 걸 말이다. 게다가 개인의 종교적 신념으로 일국의 수도를 주님께 봉헌하고 수양제도 뜯어말릴 대운하 건설을 공언하는 사람이 대안이라니... 전군은 대폭소 일발 장전... 하!!!
노통장 때문에 없어진 삼천포로 이야기가 샜는데...
대통령이 국가 운영에 중대한 엑스팩터임은 분명하나 그래봤자 공화정 대의민주주의 제도하의 국가 수장이고 행정부 수반이다. 절대왕정의 군왕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을 신민으로 낮출 필요도 없고 지긋지긋한 인간적 면모를 용인할 필요도 없다. TV 드라마 속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며 대리만족 얻을 것 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면 되는 거다. 비인간적인 지도자가 되라고.
이 때 도덕성이 필요조건이고 업무수행능력이 충분조건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당신을 향해 총질을 한 지 불과 30년도 안 됐고, 근무하던 넥타이 부대들이 민주화운동 한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지 20년밖에 안 됐으며, 군사정권에 기탁하지 않은 문민정권이 탄생한 지는 채 10년이 못 됐다. 어차피 대통령은 비전만 제시한다. 실무는 각료들이 한다. 절대.네버.에버. 도덕성이 우선이다.
이놈의 시대는 양면적이다. 한 쪽에선 시스템을 따르라 하고 다른 한 쪽에선 풍족한 자유를 주겠다고 한다. 전자만을 따르거나 전자를 통해 후자를 이루겠다는 건 메트릭스에 살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반대로 후자만을 따르려면 가난뱅이 게릴라가 돼야 한다. 고로 이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양자조합의 문제다. 조합을 완성해 상수로 만들려면 우리가 40%의 시청률로 '주몽'에 보냈던 환호를 현실에서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주어졌다(given)' 개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그것이 시민사회다.
# by | 2007/03/08 04:01 | old content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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